2020년 6월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다섯 번째 터무늬있는집에 '성북청년시민회' 소속 세 명의 청년들이 입주했습니다. 이 집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터무늬있는집이 공동으로 추진한 '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의 첫 번째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최대 4년간 거주가 가능한 희망아지트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2024년 6월 세 명의 입주자가 모두 퇴거했습니다. 성북청년시민회는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힘이 되어 주었던 터무늬있는집의 좋은 동료였습니다. 퇴거를 앞두고 세 명의 입주자를 만났습니다. 터무늬있는집에서의 4년의 시간을 회고하며, 터무늬있는집이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터무늬있는집 5호(성북 정릉, 성북청년시민회)의 세 입주자 조윤미, 정모경, 최재미
터무늬있는집(터무늬) : 터무늬있는집에 처음 들어왔던 순간을 떠올려볼까요?
최재미(잼) : 저는 프로젝트 때문에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했었어요. 프로젝트가 6개월짜리였는데, 서울에 마땅한 거처가 없어 친구 집을 전전하던 상황이라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터무늬있는집에 입주하게 됐고, 덕분에 서울에 계속 머물 수 있었어요. 다행히 프로젝트 기간이 연장돼서 일도 계속할 수 있었고요. 제가 방송작가 일을 하는데, 방송은 서울에 일이 많거든요. 터무늬있는집 때문에 지금까지 서울 시민으로 계속 살면서 방송 관련된 일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정모경(모경) : 제가 제일 먼저 터무늬있는집에 들어왔는데, 혼자 있는 게 많이 외로워서 다른 입주자들이 빨리 들어오기를 기다렸었어요.
잼 : 맞아요. 저희를 너무 기다리고 있는 게 느껴졌었어요.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저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하던지…^^.
조윤미(윰) : 저는 입주하기 전에 터무늬있는집에서 손님으로 며칠을 지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경기도에 살고 있었거든요. 성북에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에 들어가는 날이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축제 기간 동안 저를 터무늬있는집에서 재워준 거예요. 한 2주 정도 지냈었는데, 그때 처음 들어와 보고 이런 집이 있다는 거에 놀랐어요. 저는 계속 가족하고만 살았던 사람이라 셰어하우스라는 개념을 잘 몰랐거든요. 근데 생판 모르는 남이랑 사는 데도 가정집 같은 느낌에, 입주자들끼리 대화도 많이 하고. 그런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모경 : 저는 정릉동에 터무늬있는집이 처음 생겼을 때 입주해서 4년을 꽉 채워서 살았어요.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오피스텔에서 1년 정도 살았는데, 너무 외롭고 우울했어요. 사회 초년생으로 모든 게 초보였던 시기였거든요. 성북청년시민회를 알게 되면서 소금(성북청년시민회 대표)이 왜 이렇게 멀리서 왔다 갔다 하냐고, 터무늬있는집에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오게 됐어요. 터무늬있는집에 들어와서 정서적으로 정말 많이 안정됐어요.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집에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이제 다시 혼자 살아야 하는데, 제가 다시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키워준 시간인 것 같아요.
터무늬 :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하나씩 꼽아볼까요?
잼 : 길냥이와 관련된 추억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저희가 길냥이들한테 주기적으로 밥을 줬는데, 어느새 저희 집 마당이 길냥이들의 낮잠 스팟이 됐더라고요. 저희 집 마당이 햇살 좋은 날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이 자기들끼리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이었을 텐데, 이제 밥도 없고 물도 없게 돼서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저희 대신 길냥이들한테 밥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어요.
또, 저희가 구옥이다 보니 집에 벌레가 많아서 공금으로 세스코 관리를 신청했었어요. 한 번은 관리사분이 마당의 무성한 풀더미를 벌레의 원인으로 지목한 거예요. 그래서 풀을 베야 했는데, 제 남자친구가 철물점에서 낫을 사와서 풀을 베어 줬어요. 그런데, 그때가 한창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많을 때라서, 남자친구가 낫을 들고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어쨌든 그 낫으로 풀을 다 베어 주고 갔어요. 이렇게 마당에 대한 추억들이 많이 있는 거 같아요.
터무늬 :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잼 : 저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거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데, 다시 이런 좋은 멤버를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모경 : 맞아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너무 깔끔한 사람이랑은 같이 못 살 거 같아요. 깔끔한 사람이랑 함께 살면 편하긴 한데, 빚을 지는 느낌이 들어서 쉽지 않더라고요. 저희 세 명은 서로 다른 부분이 딱 감당 가능할 정도여서 너무 좋았어요. 이런 멤버들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만약에 살아야 한다고 하면, 터무늬있는집에서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슬기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윰 :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터무늬있는집에 처음 들어올 때는 내가 어떤 사람과 잘 사는 사람인지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기준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저와 잘 맞는지에 대한 기준이요. 터무늬있는집에 살았던 시간이 저에게는 그런 측면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어요.
터무늬 : 시민의 연대로 만든 집, 당신의 삶에 끼친 영향은?
잼 : 저는 올해 처음으로 4대 보험에 가입했어요. 그전까지 한 7~8년 동안은 계속 프리랜서 생활을 했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일의 공백이 꽤 길었을 때가 있었어요. 만약 제가 터무늬있는집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주거비가 엄청나게 부담이었을 거에요. 터무늬있는집이 있어서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어요. 그래서 터무늬있는집에 마음의 빚이 있고, 감사한 마음이 커요. 만약 터무늬있는집이 아니었으면 저는 다시 고향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갔을지도 몰라요.
올해 드디어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됐는데, 흔히 ‘주거사다리’ 라고 이야기하잖아요. 터무늬있는집이 저에게는 진정한 주거사다리였어요. 제가 이제 곧 결혼을 해요. 남자친구도 지방 출신이라 지방러들끼리 서울에서 집 구하기에 돌입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터무늬있는집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모경 : 저는 지금 반전세 집을 구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부동산 돌아다니는 일부터 내가 어느 정도의 예산이 있고, 대출은 얼마를 받아야 하고 이런 거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해봤거든요. 내가 그동안 진짜 편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 정말 찐으로 독립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터무늬있는집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제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기준도 없었을 것 같아요.
윰 : 요즘 각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저희끼리 자주 하는 말이 ‘진짜 좋은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돌이켜보면 터무늬있는집에서의 시간이 저희에게는 너무 귀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내 돈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었어요. 요즘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실제로 저 혼자 집을 구하러 다녀보니까 이게 너무 실감이 되는 거에요. 내 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 민간에서 임대하는 집들에 들어가보면 이게 사람 사는 걸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팔기 위한 목적에서 지었다는 느낌을 진짜 많이 받아요. 구조만 봐서는 사람이 이 방 안에서 어떻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 이 크기의 화장실에서 어떻게 샤워할 수 있는지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더라고요. 돈을 벌겠다는 목적에서만 집을 지었다는 게 느껴져서 슬프기까지 하더라고요.
터무늬있는집은 시민의 연대로 만든 집이잖아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만든 집이라는 걸 혼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많이 느꼈어요. 우리가 방 안에서 조금이라도 걸어 나올 수 있고, 거실에서 햇빛을 쐬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지만 정말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터무늬 : 시민의 연대로 만든 집, 나도 다른 청년들을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을까요?
잼 : 당연하죠. 시민들의 작은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공간에서 제가 살면서 정착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저한테는 큰 의미이고, 아까도 말했듯이 주거사다리가 된 거거든요. 그래서 저도 여유가 된다면 기꺼이 연대하고 싶어요.
모경 : 저희가 터무늬있는집 청년 네트워크 협업 지원사업으로 출자자분들과 함께 가는 소풍도 기획해서 같이 가고 했었잖아요. 그걸 기획했던 것도 도대체 어떤 분들이 이렇게 출자를 하시는 건지 궁금했던 것도 있었거든요.
윰 :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 준 성북청년시민회에 감사하다는 말도 꼭 전하고 싶어요. 같은 청년으로서 청년을 위한 집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출자자, 성북청년시민회, 사회투자지원재단 모두가 힘을 모아 이 집을 만든 거고, 또 이런 의미 있는 집에 저희를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2022년 10월에 터무늬있는집 5호 입주자들이 기획해 떠났던 터무늬있는집 가을소풍
터무늬 : 마지막으로, 내가 정의하는 터무늬있는집은? 터무늬있는집은 OOO이다.
잼 : 터무늬있는집은 저에게 '첫 둥지'다라고 하고 싶어요. 독수리가 새끼를 키울 때 새끼를 절벽에서 그냥 밀어버리잖아요. 그런데 내가 약간 밀렸을 때 처음으로 안착하는 첫 둥지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훨씬 더 컸던 것 같아요.
모경 : 저에게 터무늬있는집은 평생 못 잊을 나의 '첫 집'인 것 같아요. 사회 초년생부터 대리급까지, 그러니까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기간을 이 집에서 살았던 거거든요. 진짜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윰 : 저는 터무늬있는집은 ‘재발견’이라고 하고 싶어요.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저 스스스로를 많이 발견했어요. 첫 독립이었고, 여기 살면서 사랑도 많이 받았고, 다른 사람이랑 사는 일이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 또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내가 혼자 있을 때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이랑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인지 등등 이런 많은 것들을 발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터무늬 : 성북청년시민회는 터무늬있는집이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힘이 되어 주는 그런 단체였는데, 이렇게 계약이 종료되어 너무 아쉬운 마음이 크네요. 앞으로의 여러분의 삶도 응원합니다~!
정리_성승현 선임연구원(터무늬제작소)
터무늬있는집 5호(성북 정릉, 성북청년시민회)의 세 입주자 조윤미, 정모경, 최재미
터무늬있는집(터무늬) : 터무늬있는집에 처음 들어왔던 순간을 떠올려볼까요?
최재미(잼) : 저는 프로젝트 때문에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했었어요. 프로젝트가 6개월짜리였는데, 서울에 마땅한 거처가 없어 친구 집을 전전하던 상황이라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터무늬있는집에 입주하게 됐고, 덕분에 서울에 계속 머물 수 있었어요. 다행히 프로젝트 기간이 연장돼서 일도 계속할 수 있었고요. 제가 방송작가 일을 하는데, 방송은 서울에 일이 많거든요. 터무늬있는집 때문에 지금까지 서울 시민으로 계속 살면서 방송 관련된 일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정모경(모경) : 제가 제일 먼저 터무늬있는집에 들어왔는데, 혼자 있는 게 많이 외로워서 다른 입주자들이 빨리 들어오기를 기다렸었어요.
잼 : 맞아요. 저희를 너무 기다리고 있는 게 느껴졌었어요.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저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얼마나 이야기를 많이 하던지…^^.
조윤미(윰) : 저는 입주하기 전에 터무늬있는집에서 손님으로 며칠을 지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경기도에 살고 있었거든요. 성북에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이 많아서 새벽에 들어가는 날이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축제 기간 동안 저를 터무늬있는집에서 재워준 거예요. 한 2주 정도 지냈었는데, 그때 처음 들어와 보고 이런 집이 있다는 거에 놀랐어요. 저는 계속 가족하고만 살았던 사람이라 셰어하우스라는 개념을 잘 몰랐거든요. 근데 생판 모르는 남이랑 사는 데도 가정집 같은 느낌에, 입주자들끼리 대화도 많이 하고. 그런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모경 : 저는 정릉동에 터무늬있는집이 처음 생겼을 때 입주해서 4년을 꽉 채워서 살았어요.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오피스텔에서 1년 정도 살았는데, 너무 외롭고 우울했어요. 사회 초년생으로 모든 게 초보였던 시기였거든요. 성북청년시민회를 알게 되면서 소금(성북청년시민회 대표)이 왜 이렇게 멀리서 왔다 갔다 하냐고, 터무늬있는집에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오게 됐어요. 터무늬있는집에 들어와서 정서적으로 정말 많이 안정됐어요.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집에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이제 다시 혼자 살아야 하는데, 제가 다시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키워준 시간인 것 같아요.
터무늬 :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하나씩 꼽아볼까요?
잼 : 길냥이와 관련된 추억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저희가 길냥이들한테 주기적으로 밥을 줬는데, 어느새 저희 집 마당이 길냥이들의 낮잠 스팟이 됐더라고요. 저희 집 마당이 햇살 좋은 날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이 자기들끼리 마음 편하게 잘 수 있는 곳이었을 텐데, 이제 밥도 없고 물도 없게 돼서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저희 대신 길냥이들한테 밥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어요.
또, 저희가 구옥이다 보니 집에 벌레가 많아서 공금으로 세스코 관리를 신청했었어요. 한 번은 관리사분이 마당의 무성한 풀더미를 벌레의 원인으로 지목한 거예요. 그래서 풀을 베야 했는데, 제 남자친구가 철물점에서 낫을 사와서 풀을 베어 줬어요. 그런데, 그때가 한창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많을 때라서, 남자친구가 낫을 들고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너무 무섭더라고요. 어쨌든 그 낫으로 풀을 다 베어 주고 갔어요. 이렇게 마당에 대한 추억들이 많이 있는 거 같아요.
터무늬 :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잼 : 저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거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데, 다시 이런 좋은 멤버를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돼요.
모경 : 맞아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너무 깔끔한 사람이랑은 같이 못 살 거 같아요. 깔끔한 사람이랑 함께 살면 편하긴 한데, 빚을 지는 느낌이 들어서 쉽지 않더라고요. 저희 세 명은 서로 다른 부분이 딱 감당 가능할 정도여서 너무 좋았어요. 이런 멤버들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만약에 살아야 한다고 하면, 터무늬있는집에서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슬기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윰 :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터무늬있는집에 처음 들어올 때는 내가 어떤 사람과 잘 사는 사람인지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기준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저와 잘 맞는지에 대한 기준이요. 터무늬있는집에 살았던 시간이 저에게는 그런 측면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어요.
터무늬 : 시민의 연대로 만든 집, 당신의 삶에 끼친 영향은?
잼 : 저는 올해 처음으로 4대 보험에 가입했어요. 그전까지 한 7~8년 동안은 계속 프리랜서 생활을 했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일의 공백이 꽤 길었을 때가 있었어요. 만약 제가 터무늬있는집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주거비가 엄청나게 부담이었을 거에요. 터무늬있는집이 있어서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어요. 그래서 터무늬있는집에 마음의 빚이 있고, 감사한 마음이 커요. 만약 터무늬있는집이 아니었으면 저는 다시 고향으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갔을지도 몰라요.
올해 드디어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됐는데, 흔히 ‘주거사다리’ 라고 이야기하잖아요. 터무늬있는집이 저에게는 진정한 주거사다리였어요. 제가 이제 곧 결혼을 해요. 남자친구도 지방 출신이라 지방러들끼리 서울에서 집 구하기에 돌입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터무늬있는집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모경 : 저는 지금 반전세 집을 구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부동산 돌아다니는 일부터 내가 어느 정도의 예산이 있고, 대출은 얼마를 받아야 하고 이런 거에 대한 고민을 처음 해봤거든요. 내가 그동안 진짜 편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번에 정말 찐으로 독립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터무늬있는집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제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기준도 없었을 것 같아요.
윰 : 요즘 각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저희끼리 자주 하는 말이 ‘진짜 좋은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돌이켜보면 터무늬있는집에서의 시간이 저희에게는 너무 귀한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내 돈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었어요. 요즘 전세사기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실제로 저 혼자 집을 구하러 다녀보니까 이게 너무 실감이 되는 거에요. 내 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 민간에서 임대하는 집들에 들어가보면 이게 사람 사는 걸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팔기 위한 목적에서 지었다는 느낌을 진짜 많이 받아요. 구조만 봐서는 사람이 이 방 안에서 어떻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 이 크기의 화장실에서 어떻게 샤워할 수 있는지 그려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더라고요. 돈을 벌겠다는 목적에서만 집을 지었다는 게 느껴져서 슬프기까지 하더라고요.
터무늬있는집은 시민의 연대로 만든 집이잖아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만든 집이라는 걸 혼자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많이 느꼈어요. 우리가 방 안에서 조금이라도 걸어 나올 수 있고, 거실에서 햇빛을 쐬면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지만 정말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터무늬 : 시민의 연대로 만든 집, 나도 다른 청년들을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을까요?
잼 : 당연하죠. 시민들의 작은 마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공간에서 제가 살면서 정착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저한테는 큰 의미이고, 아까도 말했듯이 주거사다리가 된 거거든요. 그래서 저도 여유가 된다면 기꺼이 연대하고 싶어요.
모경 : 저희가 터무늬있는집 청년 네트워크 협업 지원사업으로 출자자분들과 함께 가는 소풍도 기획해서 같이 가고 했었잖아요. 그걸 기획했던 것도 도대체 어떤 분들이 이렇게 출자를 하시는 건지 궁금했던 것도 있었거든요.
윰 :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 준 성북청년시민회에 감사하다는 말도 꼭 전하고 싶어요. 같은 청년으로서 청년을 위한 집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출자자, 성북청년시민회, 사회투자지원재단 모두가 힘을 모아 이 집을 만든 거고, 또 이런 의미 있는 집에 저희를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2022년 10월에 터무늬있는집 5호 입주자들이 기획해 떠났던 터무늬있는집 가을소풍
터무늬 : 마지막으로, 내가 정의하는 터무늬있는집은? 터무늬있는집은 OOO이다.
잼 : 터무늬있는집은 저에게 '첫 둥지'다라고 하고 싶어요. 독수리가 새끼를 키울 때 새끼를 절벽에서 그냥 밀어버리잖아요. 그런데 내가 약간 밀렸을 때 처음으로 안착하는 첫 둥지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훨씬 더 컸던 것 같아요.
모경 : 저에게 터무늬있는집은 평생 못 잊을 나의 '첫 집'인 것 같아요. 사회 초년생부터 대리급까지, 그러니까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기간을 이 집에서 살았던 거거든요. 진짜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윰 : 저는 터무늬있는집은 ‘재발견’이라고 하고 싶어요.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저 스스스로를 많이 발견했어요. 첫 독립이었고, 여기 살면서 사랑도 많이 받았고, 다른 사람이랑 사는 일이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 또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어요. 내가 혼자 있을 때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이랑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인지 등등 이런 많은 것들을 발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터무늬 : 성북청년시민회는 터무늬있는집이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서 힘이 되어 주는 그런 단체였는데, 이렇게 계약이 종료되어 너무 아쉬운 마음이 크네요. 앞으로의 여러분의 삶도 응원합니다~!
정리_성승현 선임연구원(터무늬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