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청년단체 인터뷰] 해당사항없음(강북구 수유동)

터무늬있는집 13호 입주자인 해당사항없음의 진가을님과 권나민님

 

❝터무늬있는집 13호(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 수유동)의 입주단체인 ‘해당사항없음’은 이름부터 평범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의 뜻과 지향하는 바를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두 명의 입주자(진가을, 권나민)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들이 ‘수유’라는 동네에서 앞으로 써내려갈 이야기에 큰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질 인터뷰를 통해 확인바랍니다.

 

인터뷰는 2022년 5월 3일(화) 터무늬있는집 13호의 거실에서 진행했으며, 터무늬있는집의 성승현 선임연구원과 신명호 운영위원(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이 함께 질문했습니다.”(글_성승현)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진가을 : 저는 ‘해당사항없음’의 팀원이자, 입주자 대표를 맡고 있는 진가을입니다. 시를 쓰고 있습니다.

 

권나민 :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입주자 권나민입니다. 저는 연극과 영상 다큐멘터리 관련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해당사항없음’은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권나민 : 도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해당 사항이 없을 때 찍어주는 ‘해당 사항 없음’이라는 도장이요. 문구점에서 그 도장을 우연히 봤는데 너무 절묘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해당 사항 없음이 어떤 상황에서는 ‘당신은 이런 거에 해당 사항이 없어’, ‘당신은 권리가 없고, 자격이 없어’라는 거절과 밀어냄의 의미를 갖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곁에서 많이 들리는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정해져 있는 사회의 질서와 권력 구조에 순응하지 않을 거고, 그거야말로 우리 삶에 해당 사항 없는 것들이라는 저항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진가을 : 그래서 소수자, 청소년, 어린이, 여성, 학교 밖 청소년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예술과 글쓰기 등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수유동의 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터무늬있는집 13호) 입주단체 공모 때 입주신청서의 단체명에 ‘해당사항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지원 단체가 없다는 말인가 싶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대면심사에서 발표내용을 들어보니 단체가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고, 활동 계획도 알차서 한 번 더 놀랐다.❞

 

Q. 터무늬있는집 입주 전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했었나요?

진가을 : 20대~40대 여성들이 기존의 연애와 사랑이 아닌 실제로 겪고 있는 연애와 사랑 그리고 기존에 얘기되지 않았던 연애와 사랑에 대한 담론을 함께 이야기하고 에세이집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또, 학교 밖 청소년들과 집담회를 진행한 뒤에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잡지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었고요.

 

권나민 :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기관인 ‘모두의 학교’에서 ‘해당 땡땡 없음’이라는 주제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했었어요. 처음에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20대~40대 여성들과 함께 진행한 ‘해당 사랑이 없다’였고요. 이 프로그램을 두 기수 운영했는데, ‘사랑을 기록하는 저녁’, ‘사랑을 기록하는 오후’라는 제목의 에세이집까지 냈어요.

 

학교 밖 청소년이랑은 ‘해당 노동 없음’, ‘해당 학교 없음’, ‘해당 안전 없음’, ‘해당 장치 없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학교 밖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작업을 가지고 전시회를 진행했었어요.

 

올해는 송정중학교 학생들이랑 성교육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또, 중년 여성분들이 자기 삶을 기록하고 자랑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었는데, 사진을 같이 찍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Q. 굉장히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네요.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은데, 대상은 어떻게 선정하나요?

진가을 : 저희 멤버들이 모두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저희 삶의 경험과 맞닿아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었어요.

 

권나민 : 특별히 저희 대표님이 학교 밖 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오랫동안 해오기도 했고, 이들과 조금 더 긴밀하게 소통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어요. 여기서 파생해서 우리가 해당사항없음이라는 단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관련된 의제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20대~40대 여성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비슷한 결로 중년 여성의 삶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이렇게 매번 주제에 맞춰서 대상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진가을 : 해당사항없음에서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주류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앞으로도 자기 이야기를 잘 풀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 찾고 만날 예정이에요.

 

Q. 올해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진가을 : 일단 현재 확정된 건 터무늬제작소와 함께 진행하는 ‘청년 의제별 네트워크 지원사업’이 있어요. 이 사업을 통해 청년주거, 그리고 세대 담론에 대해 다루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또, 청년허브의 청년활동가 지원사업에도 선정됐어요. 학교 밖 청소년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비진학 청년이 되는 건데, 이들은 어디로 가서 어떤 일을 할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년활동가 지원사업을 통해서 이들과 함께하는 플랫폼, 혹은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함께 공부하거나 모임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려고 해요.

 

권나민 :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사업 가운데 온라인으로 연극 만드는 작업을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어서 지원했는데, 지금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이 사업에 선정되면 같이 연극을 만들게 될 것 같아요.

 

Q. 지원사업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지원사업을 하면 행정업무도 많아져서 힘들지는 않나요?

권나민 : 맞아요. 그래서 여기 터무늬있는집에 부엌이 있으니까 소소하게 동네 주민들이랑 팝업 형태로 비건 식당을 열거나, 아니면 책 모임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Q. 장기적으로 해당사항없음이 어떤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전망도 하고 있나요?

 

진가을 : 올해 들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지금은 주로 지원사업으로 단체를 유지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자체 사업을 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어요.

 

Q. 입주한 지 보름 정도 지났는데, 터무늬있는집에서 살아보니 어떠세요?

진가을 : 지금 제 입이 귀에 걸린 게 보이시나요?? 저희만 너무 좋은 곳에 사는 것 같아 다른 팀원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아요. 그리고 이렇게 단독주택에서 사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단독주택에 사니까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또 오며 가며 이웃 주민분들을 만날 수도 있고요. 이사 와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이웃 주민분들이 다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어제 우연히 방범대장님을 만났는데, 참고로 방범대장님은 우리 집 앞의 화단을 가꾸시는 분인데 화단이 진짜 예뻐요. 방범대장님이 그러시는데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이 동네에서 몇십 년씩 사신 분들이라며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으면 동네에 소문이 다 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끼리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라고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어요? 동네 할머니들이랑도 오려가며 인사를 하는데 동네 자체가 너무 평화롭고 좋더라고요.

 

Q. 터무늬있는집에 입주하기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셨을 것 같은데, 부모님과 함께 살면 내가 사는 동네를 내 동네라고 인식하기 쉽지 않고 부모님의 동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지금은 여기가 나의 동네라는 느낌이 드시나요?

진가을 : 나민이랑도 이 동네는 서울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오래된 집들도 많고. 또, 어떤 문제가 있으면 마을 주민분들이 함께 해결하려는 문화가 있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시민출자 청년주택 사업을 하는 목적은 기본적으로는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청년들이 한 동네에 정착해서 다양한 지역활동을 이어 나가고, 이것들을 통해서 지역이 조금 더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바가 있다. ‘해당사항없음’이 앞으로 터무늬있는집에 살면서 좋은 활동을 통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Q. 마지막으로, 터무늬있는집을 위해 뜻을 모아주신 출자자분들에게 감사의 한 말씀 부탁드려요.

진가을 : 예전에 신림동 쪽에서 잠깐 자취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살 때는 치안 문제도 그렇고, 월세도 높고, 청년들이 좋은 집에서 살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터무늬있는집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면서 문득 ‘내가 어쩌다 이렇게 좋은 집에 들어오게 됐지?’라는 생각도 들고, 또 제 자신이 저절로 충전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 집을 볼 때마다 시민출자 청년주택이라는 것이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옛날 집을 이렇게 리모델링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 자체도 정말 기발한 것 같고요. 이렇게 터무늬있는집이라는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주신 많은 출자자분들께 항상 감사해요.

 

권나민 : 어제 저희 팀원 한 명이 자고 갔는데, 그 친구는 지금 부천 쪽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거든요. 한 10평 정도 되는데 집에 가만히 있으면 들리는 소리가 냉장고 울리는 소리밖에 없고, 빛이 잘 안 들어오니까 식빵 같은 것도 금방 상해버리고, 그래서 뭔가를 오래 가꾸고 보존하는 게 엄청 힘든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자기 마음에 있던 공허감 같은 게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서 엄청 신기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여기에 이사 와서 비슷한 거를 느꼈었거든요.

 

예전에 구로디지털단지 쪽에서 혼자 산 적이 있는데, 그때는 잘 살려고 노력을 해도 집에만 들어오면 그런 의지가 다 깎이고 소진되고, 이런 기분이 당연한 건가 싶은 생각에 언제나 우울감 같은 게 있었어요. 이렇게 집이라는 공간이 바뀌고 확장되니까 제 삶이 순식간에 전환되는 것 같아요.

 

터무늬있는집이 더 많아져서 저와 같은 기분을 다른 청년들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대 청년들이 다들 힘들고 아프잖아요.

 

저희가 또 열심히 출자금을 모아서 터무늬있는집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_성승현

 

인터뷰 후에 신명호 운영위원님이 맛있는 점심식사도 사주셨습니다?

 

터무늬있는집